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Tempio di Antonino e Faustina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Tempio di Antonino e Faustina은 포로 로마 중간에 로물루스 신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안토니누스 황제의 부인인 파우스티나 마조레 Faustina Maggiore가 죽자 황제는 자신의 부인을 위해 141년에 이 신전을 만들었습니다

파우스티나 황후는 전통적인 왕가의 자손으로 117년에 안토니누스 황제와 결혼했습니다 슬하에 두 아들과 두 딸을 낳았는데요 딸 중에 파우스티나 미노르는 나중에 황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안토니누스 황제의 후계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누스의 고모이기도 합니다

138년에 안토니누스가 황제가 되고 파우스티나는 “아우구스타”라는 황후의 칭호를 받고 안토니누스 황제와 죽기 전까지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161년에 황제도 죽자 이 파우스티나 신전 부인인 파우스티나와 함께 안장됩니다 그리고 신전 전면에 안토니누스 황제의 이름이 추가됩니다

그 후 신전은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Tempio di Antonino e Faustina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외관

신전답게 높은 계단 위에 17미터 높이의 대리석 기둥을 6개 세웁니다 그리고 양옆에 두 개씩 코린트식 기둥을 세워 놓았습니다

로마의 교황들은 로마시대의 신전들을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아마 온갖 신들을 모신 로마 자체를 싫어했다는 게 옳은 말일 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로마시대의 건축물들을 파괴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전 기둥 꼭대기에는 로프를 고정할 수 있는 홈이 파여 있는데 이곳에 로프를 묶어서 기둥을 부숴버리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단단해서 부실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파괴의 역사는 계속돼서 조금 쓸만한 것들은 모두 뜯어서 자신이 만든 건물을 장식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대리석과 조각상들을 갈아서 석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11세기에 신전으로 쓰던 건물은 산 로렌조의 미란다 성당으로 개조했습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산 로렌조가 이 지역에서 사형을 당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데요

미란다라는 이름도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잘 모릅니다 대략 수도원을 후원했던 후원자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536년 카를 5세가 로마로 진격했을 때 이 성당은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1602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성당을 다시 지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뒤의 건물은 그때 다시 지은 건물입니다

1430년에 마틴 5세 교황은 이 성당을 현재의 약학 대학으로 사용하게 했는데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대학이 관할하고 있고 로마시가 유지비용을 대고 있지만 성당 내부는 절대 방문을 허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