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코르디아 신전 Tempio della Concordia는 포로 로마노에서 규모 면에서 아주 작은 신전이었습니다 제대로 형태가 남아있는 다른 콩코르디아 신전은 시칠리의 아그리젠토에 있는 것이 유명합니다
하지만 아그리젠토의 콩코르디아 신전은 그리스의 식민지시대 때 만들어진 것이라 로마의 것이라 할 수 없는 그리스의 신전입니다
지금 소개하는 콩코르디아 신전은 로마의 중심지 포로 로마노에 지어진 콩코르디아 신전 Tempio della Concordia입니다
건물
좀 전에 설명드렸던 타불라리움 앞에 위치한 콩코르디아 신전 Tempio della Concordia은 지금은 아무것도 없이 터만 남아있어 어떤 것이 신전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이 사원이 만들어진 때는 기원전 367년으로 루치오 푸리오 카밀로 Lucio Furio Camillo의 명령으로 건축을 시작합니다
건축되던 당시에는 가로 24미터 세로 45미터에 6개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후 화재로 망가진 것을 티베리우스가 기원전 7년에 복원합니다
복원을 할 당시 신전은 매우 작은 규모로 축소되는데 가로 15미터 세로 25미터의 원래 건물의 반정도의 크기로 복원합니다
지금 보시는 터는 티베리우스가 만든 복원한 신전의 터입니다
이렇게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계속해서 포로 로마노에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기 때문에 그만큼 신전을 지을 수 있는 땅이 모자랐던 거죠
콩코르디아 신전 무슨 의미?
로마인들이 콩코르디아 신전을 지은 데는 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기원전 367년 린키누스와 세스티우스라는 두 명의 호민관의 이름을 딴 법률이 원로원에서 통과가 됩니다
이 법은 지금까지 귀족 계급만이 될 수 있었던 로마 공화정의 최고 지도자인 집정관 Console의 직책에 평민도 출마할 수 있게 만든 법입니다
로마는 건국 이후 계속해서 1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평민과 귀족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그룹이 대치하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항상 우두머리는 귀족의 차지였죠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을 하거나 거대한 공사를 할 때 돈이 많았던 귀족의 금전적인 도움이 있지 않으면 이런 행정적인 일들을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런 금전적인 이유로 인해 귀족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평민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는 폐해가 만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노사 갈등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하지만 이 법이 원로원을 통과하면서 드디어 평민도 집정관의 위치로 올라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겁니다
콩코르디아 신전 Tempio della Concordia은 이렇게 평민과 귀족이 화합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신전입니다
그렇게 해서 거대한 평민들과 귀족들이 평등한 권리로 로마를 통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284년 화재로 다시 복원을 했고 마지막으로 언급된 것은 8세기경이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은 망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이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1450년경에 모두 파괴되어 신전의 대리석과 재료들은 항상 그랬듯이 다른 새로운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재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