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개선문 Arco di Costantino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Arco di Costantino는 312년 막센티우스를 상대로 밀비오 다리의 전투에서 승리를 기념하면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통치 10년을 경축하는 의미로 315년 원로원이 헌정하여 고대 승리의 길 한가운데 만든 개선문입니다

오른쪽 포로 로마노 입구에 있는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과 안쪽에 위치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 그리고 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로마에 남아있는 세 개의 개선문입니다

그중 이 개선문이 가장 새것입니다

티투스 황재의 개선문은 90년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은 203년에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은 31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뭐 새것이라고 해도 거의 2000년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좀 그렇지만 아무튼 새거라 그런지 세 개 중 제일 화려하고 멋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크기

일단 개선문은 높이가 21미터 넓이가 25.7미터 깊이는 7.4미터로 매우 큰 건축물이지만 콜로세움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그런지 그리 커보이지 않습니다

이 개선문은 3개의 아치를 갖고 있는 데 중앙의 가장 큰 아치의 높이는 11.45미터 넓이는 6.5미터나 됩니다

이렇게 화려하게 만들어 놓은 개선문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위해 만들었지만 이 겉장식을 모두 새로 만든 것이 아니고 여러 황제들 시대 때 만들었던 조각들을 여기저기서 가져다 붙여 놓은 것입니다

이전 시대 트라이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콤모두스 시대 기념물등에서 가져온 조각품들로 장식을 했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이 “고대로마시대의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고 개선문 건설 당시 단순히 돈이 별로 없어서 훌륭한 조각가들에게 일을 의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네요

그럼 위에서부터 어떤 것들을 갖다 붙였는지 어떤 것이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 때 만들었는지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부조

맨 꼭대기 한가운데 보시면 우리는 절대 알아볼 수 없는 라틴어가 쓰여 있습니다

대략의 뜻은 “황제와 원로원과 국민에게 정의로운 전쟁으로 복수를 했기 때문에 이 아치를 바칩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지금 보시는 앞뒤로 같은 말이 써있습니다

이 석판 양옆에 네모난 부조가 두 개씩 있는 것 보이시나요 반대편에도 양쪽에 두 개씩 총 여덟 개가 있는 데 이것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 만들어 진것을 가져온것입니다

이 부조 양 옆으로 무슨 장군 같은 석상이 전부 네 명이 서있습니다 반대편도 마찬가지고요 전 처음에 무슨 장군들인 줄 알았는데요 여러분도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헌을 찾아보니 다키아 전쟁 포로들이랍니다 자세히 보면 두 손이 결박당한 포로의 모습입니다 가까이 가셔서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이 전쟁포로들은 트라이야누스 황제 시절에 만든 조각품입니다

트라이야누스 황제는 우리나라 광개토대왕 같은 분으로 로마의 영토를 가장 넓게 확장했던 황제로 이 다키아인은 다뉴브강 하류에 살던 인도 유럽계 민족인데

이들을 정복하고 포로로 끌고 온것을 묘사하는 조각품입니다 이 석상들은 아름다운 코린트식 기둥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앙의 아치 양옆에는 동그란 부조가 좌우 두 개씩 있는데 이 부조들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의 조각물입니다

그 밑으로 있는 것들이 이 개선문의 주인인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 때 만들어진 조각들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3년 기독교를 정식 종교로 인정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한 황제로 유명하죠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황제였지만 콘스탄티누스대제가 기독교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이교도에 속했던 기독교인들의 종교를 인정해 주었던 것뿐이었죠

역사학자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종교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증거로 개선문에 기독교가 아닌 이교도의 신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위치와 주소

Via di San Grego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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