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가 있다면 로마여행 중에 식사는 어떻게 하지? 제가 알려드릴게요
로마에 가서 제대로 먹어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알레르기나 글루텐 프리 같은 식단 제한이 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말이 통하면 뭐합니까, 메뉴판이 시처럼 적혀 있으니 재료가 뭔지 감이 안 잡힐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음식 문제 때문에 여행이 힘들었다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먹을 수 있는 메뉴 찾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 많은 트라토리아 안에서 교차 오염을 피해야 하고, 복잡한 메뉴 설명을 스스로 해석해야 하고, 전통의 맛도 놓치지 않으면서 내 식단도 지켜야 하니까요.
로마 식당들은 기본적으로 “있는 그대로 먹는 문화”가 강합니다. 그래서 특별 요청을 하면 괜히 눈치가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전하긴 하지만 밋밋한 메뉴만 고르게 되고, 여행의 즐거움이 반쯤 줄어드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도 방법은 있습니다. 조금만 알고 가면 훨씬 수월해집니다.
메뉴판에서 위험 신호 읽는 법
로마 메뉴는 재료를 딱딱하게 적기보다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카치오 에 페페’처럼 단순해 보이는 음식도, 사용하는 향신료 혼합물에 미량의 밀 성분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프리토 미스토’는 거의 대부분 밀가루 반죽을 입혀 튀깁니다.
전통 식당에서는 튀김옷 입힌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같은 기름에 넣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게 교차 오염의 원인이 되지요.
메뉴에 적힌 단어를 좀 알아두면 도움이 됩니다. ‘farina’는 밀가루, ‘panato’는 튀김옷을 입혔다는 뜻, ‘malto’는 보리에서 나온 재료를 의미합니다.
‘naturale’라는 표현은 알레르기 성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가공을 덜 했다는 의미이니 안심하긴 이릅니다.
정말 심한 알레르기가 있다면, “senza tracce di ~”처럼 ‘~의 흔적도 없는’이라는 문장을 이탈리아어로 적은 카드를 미리 준비해 두세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합니다.
아니면 통역 앱을 쓰세요
식단을 배려해 주는 로마 식당들
요즘은 로마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트라스테베레에 있는 볼리아 디 피짜는 글루텐 프리 피자를 따로 굽는 주방이 있습니다. 장작 화덕에서 구운 사워도우 피자인데, 맛도 뒤처지지 않습니다.
판테온 근처의 Armando al Pantheon은 전통 레시피를 응용해 비건 메뉴를 선보입니다. 예를 들어 유대식 아티초크를 만들 때 버터 대신 올리브 오일을 사용합니다.
테스타치오 시장의 Mordi e Vai는 글루텐 프리 옵션을 갖춘 내장 샌드위치로 유명하고, 몬티 지역의 Zia Rosetta는 쌀가루로 만든 빵을 사용합니다.
전문 베이커리를 찾는다면 바티칸 근처 Celiachiamo도 괜찮습니다. 옥수수 가루로 만든 카놀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 지구에 있는 Nonna Betta는 전통적으로 글루텐과 유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메뉴가 많아 비교적 편하게 식사할 수 있습니다.
부탁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로마에서는 요청을 “제한”처럼 말하기보다 “기대”처럼 표현하는 게 좋습니다.
“이건 못 먹어요”보다 “글루텐 프리로 맛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라고 말해보세요.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저녁보다는 점심이 낫습니다. 저녁 시간엔 주방이 전쟁터처럼 바쁘거든요.
와인 바에서는 “gluten free salumi”라고 말하면 글루텐이 없는 숙성육을 안내해 주기도 합니다.
여과하지 않고 아황산염이 적은 와인을 원하면 “vino naturale”라고 해보세요. 채식주의자라면 버터, 치즈, 계란을 빼 달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로마의 채소 요리에도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약국에서 빨간 십자 표시가 있는 글루텐 프리 간식을 사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급할 때 꽤 든든합니다.
식재료를 직접 사는 방법도 있습니다
스페인 광장 근처의 Castroni에서는 글루텐 프리와 비건 식재료를 폭넓게 판매합니다. Eataly 로마 매장에도 글루텐 프리 파스타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침에는 캄포 데 피오리 시장에서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고, 숙소가 아파트형이라면 Conad City 슈퍼마켓을 이용해 보세요.
글루텐 프리 제품이 비교적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리소토용 쌀은 대체로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또 ‘Gluten Free Road’ 같은 앱을 활용하면 인증된 식당을 찾기 쉽습니다.
식이 제한을 고려한 개인 푸드 투어를 예약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런 투어에는 관련 교육을 받은 직원이 있는 트라토리아 방문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만 준비하면, 식단을 지키면서도 로마의 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굳이 양보만 하면서 여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방법을 알고 가면, 훨씬 당당하게 주문하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