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타 신전 Tempio di Vesta

베스타 신전 Tempio di Vesta은 로 로마노 안에 있는 유적들 중에서도 제일 오래된 유적 중에 하나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곳에 있는 여러 신전 중에 제일 실용적인 신전인 것 같은데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불을 보존하는 신전입니다

베스타 신전의 임무

로마가 건국되던 당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석기시대에 속합니다 나라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움막 촌 정도였을 겁니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로마인들은 집의 가운데 우리식으로 화덕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온 가족이 군불을 때던 시기였죠

이 시기에 불씨는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지금처럼 성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불씨가 꺼지면 불 잘 붙는 나무를 비벼서 힘들게 불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기원전 4세기경에 로마의 2대 왕인 누마 폼필리우스 Numa Pompilius는 아예 대지와 불의 여신의 베스타 신전 Tempio di Vesta를 지어서 불씨를 보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임무만을 전적으로 수행하게 베스탈레 Vestale라는 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베스타 여사제라고 불렀습니다

베스타 여사제

베스타 신전 Tempio di Vesta에는 왕과 베스타 여사제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사제를 뽑는 일은 아주 중요했죠

아무나 여사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일단 6살에서 10살 사이의 여자아이 중에 부모가 모두 살아있고 몸에 전혀 이상이 없이 건강해야 뽑힐 수 있었습니다

뽑힌 아이는 사제가 되는 의식을 공개적으로 아주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보통 처음 10년 동안 여사제의 직을 철저하게 공부합니다 그 후 10년 동안은 여사제 직을 수행하며 불을 지키고 제사를 담당하죠 나머지 10년 동안에는 새로 들어온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합니다

이렇게 30년 동안 여사제의 직을 잘 이행하면 우리나라 옛날에 열녀비 세워주듯이 석상을 만들어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기도 했습니다

베스타 여사제의 벌칙

베스타 신전 Tempio di Vesta의 여사제는 30년 동안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이를 어기고 순결을 더럽히면 무시무시한 벌을 받게 되는데 바로 산채로 생매장을 해서 죽여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궁녀들처럼 평생 혼자 살면서 왕의 눈에 들기만 바라면서 궁안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폐쇄된 환경에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30년의 기간이 끝나 사제의 직을 그만두게 되면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제 직을 수행하면서 아주 높은 수준의 경제적 지원도 받고 사회적인 명사로 종교 활동도 하고 여가도 즐기면서 살 수 있었죠 그래서 무척 바빴다고 하네요

예를 들어 검투경기 같은 것도 관람할 수 있었는데요 항상 가장 앞의 좋은 자리를 여사제들을 위해 마련해 놓았습니다

또한 행사나 신성한 의식이 있을 때 여사제를 위해 마차나 가마를 타고 이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동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를 만나게 되면 사형을 면하게 해주는 권한도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대우를 잘 해 주었는지 상상하실 수 있으시겠죠?

베스타 신전 모습

지금 보시는 베스타 신전은 기원전 4세기에 지은 폼필리우스의 신전은 아닙니다

불씨를 보존하는 신전이었기 때문에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났죠

기원전 241년 210년 192년 세 번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했고 64년 네로 치하의 로마 대화재 때도 소실된 것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내인 율리아 돔나가 마지막으로 재건한 것의 형태가 지금 보시는 모습입니다

기둥이 세 개밖에 남지 않았지만 원래 이 기둥은 20개로 직경 15미터의 원형 건물로 지었고 안쪽에 대리석으로 벽을 쌓아 바람을 차단했습니다

지붕은 청동판으로 덮었고 불이 붙을 때 나오는 연기가 빠지는 구멍이 지붕 한가운데 뚫려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천년 동안 밝혀왔던 불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하고 391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황제가 되고 로마에 있는 모든 다른 신들의 숭배를 금지하면서 베스타 신전의 불도 꺼져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