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카 줄리아 Basilica Giulia

바실리카 줄리아 Basilica Giulia는 이탈리아식 발음이고 역사적으로는 바실리카 율리아 Basilica Jiulia라고 불렀습니다

회당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불리는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 로마의 영웅 시저 때문인데요 영어권 사람들은 율리우스 시저로 부르는데요 라틴어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라고 부르죠

이탈리아 사람들은 줄리오 체사레라고 부릅니다 이렇다 보니 회당의 이름도 구글에선 바실리카 율리아라고 표시해놨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바실리카 줄리아 Basilica Giulia라고 부르는 거죠

뭐 여기 포로 로마노에 있는 이름들이 전부 그런 식으로 되어 있으니까 너무 헷갈려하지 마시고요 여러분도 입에 잘 붙는 이름으로 부르시면 되겠습니다

역사

바실리카의 건축은 기원전 1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셈프로니우스 그락쿠스라는 분이 원래 셈프로니아 회당이 있던 자리에 다가 큰 회당을 만듭니다

주변에 있던 창고들을 허물고 그 당시 권력자였던 아프리카누스의 땅을 조금 얻고 해서 원래 있던 것보다 훨씬 큰 건물을 짓습니다

한 100년 정도 잘 쓰다가 기원전 54년에 카이사르가 자신의 이름을 붙인 공회장을 건설하면서 이곳도 같이 재정비하게 됩니다

기원전 46년에 완공은 못했지만 개장을 하면서 카이사르에게 헌정을 하죠 그 덕에 이곳에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율리아 Iulia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갑작스럽게 살해당하면서 이 공사는 그의 양아들이었던 아우구스투스가 완공을 하죠

외관과 용도

바실리카 줄리아 Basilica Giulia는 옆면의 길이가 101미터 폭은 49미터의 큰 직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앙에는 길이 82미터 폭 18미터의 홀을 만들었고 직사각형을 따라 거대한 기둥들을 세우고 이를 5 등분해서 다섯 개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돌들이 바로 내부와 외부에 기둥을 세워놓았던 기초들입니다 굉장히 규모가 크죠?

이 공간들은 나무로 칸막이를 만들거나 대형 커튼으로 나눴기 때문에 중앙의 홀은 많이 어두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햇볕이 들어오도록 3층을 만들고 3층 전체를 창문으로 만들어 중앙 홀이 어둡지 않게 했습니다

5개로 나눈 공간에선 법원이 재판을 하는 법정으로 사용을 했다고 하는데요 큰 재판의 경우 이 다섯 개의 공간을 나눴던 칸막이를 치워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특이하게도 보통의 회당은 길이가 짧은 쪽에 출입구를 만들곤 했는데 이 건물의 출입구는 길이가 긴쪽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분산하기 위해서 그런 거로 생각됩니다

법원 이외에도 무역거래소 각종 계약을 하는 장소로 사용되었고 길가로 나있는 상점에선 물건을 구매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계약하고 공증받고 하는 것이 쉬워서 이런 용도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네요

수난의 바실리카 줄리아

바실리카 줄리아 Basilica Giulia는 완공되자마자 기원전 12년에 이 지역에 화재가 나는 바람에 많은 피해를 봤지만 다시 재건했고 재건하고는 바로 가이우스와 루키우스의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서기 283년에 다시 불이 나서 파괴된 것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복원하면서 개조합니다 또한 410년에 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하면서 망가진 건물을 6년 후에 다시 복원하죠

그러나 가장 큰 피해를 준 것은 역시나 바티칸이죠

교황 시대에 이곳은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채석장이었습니다 바실리카 내부와 바닥을 장식했던 대리석은 물론이고 기둥까지 전부 가져가서 다른 건물 짓는 데 사용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불쌍하게 기초만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