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숨겨진 건축학적 보물들

로마의 숨겨진 건축학적 보물들 관광객 들에게 콜로세움이랑 바티칸은 말할 것도 없이 봐야되는 유적이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다 보니 실제로는 많은 여행자들이 로마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지쳐버립니다.

통계를 보면 관광객 열 명 중 여덟 명 가까이가 인파 때문에 주요 명소에 15분도 채 머물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사진 몇 장 찍고, 사람에 떠밀리듯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북적거림에서 몇 걸음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로마가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줄 설 필요도 없고, 소음도 없는 공간들이죠. 베르니니의 조각이 숨 쉬는 르네상스 시대 안뜰, 도시를 내려다보는 중세의 탑, 카라바조의 그림이 그대로 걸려 있는 바로크 예배당 같은 곳들 말입니다.

이런 장소들은 흔한 관광 동선에서는 슬쩍 비켜나 있어서,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곳에서야말로 로마의 역사와 예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경험이 시작됩니다.

로마의 숨은 안뜰과 궁전은 어디에 있을까

로마의 진짜 얼굴은 유명한 거리보다, 이름 없는 문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 지구 한가운데인데도 초인종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궁전들이 아직도 남아 있죠.

나보나 광장 근처부터 천천히 걸어보는 게 좋습니다. 스파다 궁전에 있는 보로미니의 갤러리는 시선을 완전히 속이는 원근법으로 유명한데, 직접 보면 “아, 이래서 천재라 했구나” 싶어집니다.

비아 줄리아 쪽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겉보기엔 평범한 건물 안에 고대 분수와 안뜰이 숨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터폰을 누르고 조심스레 들어가야 하는 곳도 있고요. 아벤티노 언덕에 올라가면 분위기는 또 달라집니다.

오렌지 정원의 열쇠 구멍 사이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딱 들어오는 장면은, 괜히 사람들이 숨을 죽이는 게 아닙니다. 현지 사람들은 해 질 무렵을 특히 좋아합니다.

관광객들이 빠져나가고, 트라베르틴 아치 사이로 노을빛이 스며들 때 이 공간들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나거든요.

다만 이런 안뜰과 궁전은 여전히 주거 공간이나 사무실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니,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은 피하는 게 예의입니다.

발밑에 또 하나의 도시, 지하 로마

로마의 진짜 깊이는 위가 아니라 아래에 있습니다.

산 클레멘테 대성당에 들어가 보면 그 말이 바로 이해됩니다. 12세기 교회 아래에 4세기 바실리카가 있고, 그 아래에는 다시 1세기 미트라 신전이 숨어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 들죠.

근처에 다시 문을 연 도무스 아우레아에서는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 흔적을 볼 수 있는데,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이곳에서 고대 장식을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감회가 다릅니다.

조금 더 한적한 곳을 원한다면 첼리오 언덕의 로마 가옥을 추천합니다.

당시의 아파트 구조와 프레스코화가 놀랄 만큼 잘 남아 있고, 줄을 거의 서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지하 유적들은 사계절 내내 온도가 일정해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포근합니다.

고고학자들이 괜히 평일 오전을 추천하는 게 아닙니다. 그 시간대에 가면, 정말로 ‘발견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티칸 말고도 넘쳐나는 바로크의 정수

사람들이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줄을 설 때, 로마 곳곳의 작은 바로크 교회들은 조용히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산트 이냐치오 교회에 들어가면 안드레아 포초의 천장화가 눈을 사로잡는데, 돔이 없는 공간에 가짜 돔을 만들어낸 착시 효과가 압권입니다.

바로 근처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에는 카라바조의 대표작 세 점이 한 예배당에 걸려 있는데, 믿기지 않을 만큼 한산한 경우가 많습니다.

좀 더 극적인 바로크를 보고 싶다면 키리날레 광장 주변을 둘러보세요.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교회에서는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황홀경’이 자연광과 함께 연극처럼 연출됩니다.

이런 공간들은 대부분 소란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좋죠. 미술사 전공자들은 미사 시간 사이를 노리라고 말합니다. 그때가 가장 조용하고, 작품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고대만 있는 줄 알았다면, 로마의 20세기

로마는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도시가 아닙니다. 의외로 현대 건축도 꽤 흥미롭습니다.

콰드라로 지구에 있는 ‘정사각형 콜로세움’, 정식 명칭으로는 이탈리아 궁정 궁전은 합리주의 건축의 상징 같은 건물입니다.

EUR 지구에 가면 1942년 만국 박람회를 위해 계획되었던, 지금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트라베르틴 석조 건물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조금 더 실험적인 걸 보고 싶다면 페루지니가 설계한 카사 스페리멘탈레도 흥미롭습니다. 1960년대에 지어진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마치 미래에서 떨어진 나무집처럼 보이죠.

이런 건축물들은 로마가 끊임없이 변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현지 건축가들은 해 질 무렵을 추천합니다. 낮과는 전혀 다른 그림자가 건물 위에 드리워지면서, 고대 유적과는 또 다른 로마의 얼굴이 드러나거든요.